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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사회 문제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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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익명 조회 698회 작성일 2021-02-22 23:47:2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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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업사회와 그 미래
저자: 시어도어 카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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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문제의 근원

45. 앞에 열거한 증상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이런 증상들이 대규모로 만연해 있다. 오늘날 세상이 점점 미쳐가고 있음을 지적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 사회에서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원시 인류가 스트레스와 좌절로 인한 고통을 적게 겪었으며, 현대인보다 자신의 인생에 더 만족했으리라고 믿는 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물론 원시 사회라고 해서 모든 것이 편안하고 쾌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호주 원주민 부족에서는 여성학대가 흔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일부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에서는 성 전환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앞 문단에서 열거했던 것과 같은 문제들은 분명 현대 사회에서처럼 흔하게 나타나는 문제는 아니었다.

46. 현대 사회의 사회적, 심리적 문제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현대 사회가 지금까지 인류가 진화해 왔던 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도록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또 과거 환경에서 살면서 발전시켜 온 행동 양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현대 사회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온갖 비정상적인 환경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권력 과정에 제대로 참여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것만이 사회 문제의 유일한 근원은 물론 아니다. 사회 문제의 한 근원으로서의 권력 과정 붕괴를 다루기에 앞서 우리는 몇 가지 다른 근원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47. 현대 산업사회가 안고 있는 비정상적 환경으로는 과도한 인구 밀도, 자연으로부터의 인간 소외, 지나치게 빠른 사회 변화, 대가족이나 마을, 부족 등과 같은 자연스러운 소규모 공동체의 붕괴 등을 들 수 있다.

48. 인구 과밀이 스트레스와 공격성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인구 과밀과 자연으로부터의 인간 소외는 기술 발전의 결과로 빚어진 현상이다. 산업화 이전의 대부분의 사회는 농경 사회였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도시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으며, 도시에 사는 인구 역시 엄청나게 늘어났다. 한편 현대적 농업 기술 덕분에 지구는 이제껏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한 과밀한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게되었다. (또한 기술로 인해 인구 과밀의 부정적 효과는 더욱 강화되었는데, 이는 기술이 사람들의 손에 더욱 더 강한 파괴력을 쥐어 주었기 때문이다. 전동 잔디깎이, 라디오, 오토바이 등등 저 수많은 종류의 소음 발생 장치들을 생각해 보라. 만일 이런 기계들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평화와 고요를 바라는 사람들은 소음으로 인해 좌절에 빠지게 될 것이다. 반면 기계들을 규제한다면, 이번에는 기계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규제로 인해 좌절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런 기계들이 애초에 발명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갈등도 좌절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49. 원시 사회에는 (아주 서서히 변화할 뿐인) 자연이 안정적인 생활기준을 제공해 주었고, 사람들은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반대로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 사회가 자연을 지배하고 있으며, 기술의 변화에 따라 현대 사회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안정적인 생활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50. 보수주의자들은 바보다. 그들은 전통적 가치들이 망가지고 있다고 불평하면서도, 기술의 발전과 경제 성장을 열광적으로 지지한다. 한 사회의 기술과 경제의 급격한 변화는 사회의 다른 측면들의 급격한 변화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런 급격한 변화가 필연적으로 전통적 가치들을 붕괴시킨다는 자명한 사실을 보수주의자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51. 전통적 가치의 붕괴는 전통적인 소규모 사회 집단을 묶어 주고 있는 유대 관계가 붕괴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마련이다. 현대의 환경이 개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새로운 지역으로 옮겨가도록 요구하거나 유혹한다는 점도 소규모 사회 집단의 와해를 촉진한다. 그런 이유를 제쳐놓더라도, 우선 기술 사회가 효율적으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족 간의 유대와 지역 공동체를 약화시켜야만 한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체제에 최우선으로 충성해야 하며, 소규모 공동체에 대한 충성은 부차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소규모 공동체의 내부적 충성도가 체제에 대한 충성도보다 더 강력할 경우, 그 공동체는 체제를 희생시키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52. 고위 공무원이나 기업 임원이 어떤 자리에 능력있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사촌이나 친구, 같은 종교의 신도를 앉힌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체제에 대한 충성보다 사적인 충성을 우선시한 것이고, 이는 곧 `족벌주의 또는 `차별이 되는데, 둘 다 현대 사회에서는 끔찍한 범죄 행위다. 사적 또는 지역적 충성을 체제의 충성에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한 채 산업사회를 지향하는 사회는 대부분 몹시 비효율적이다. (라틴 아메리카를 보라.) 따라서 선진 산업사회는 오로지 거세되고, 길들여진, 그리고 체제의 도구가 되어버린 소규모 공동체들만을 허용할 수 있다.(9)

53. 인구 과밀, 급격한 변화와 공동체의 붕괴는 그 동안 사회 문제의 근원으로 널리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만으로는 오늘날 볼 수 있는 광범위한 사회 문제를 설명하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믿는다.

54. 산업화 이전의 도시들 중 몇몇 도시는 매우 큰 규모와 높은 인구 밀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도시의 주민들이 현대인들처럼 심리적 문제들 때문에 고통을 겪었던 것 같지는 않다. 오늘날에도 미국에는 여전히 인구 밀도가 낮은 농촌들이 남아 있으며, 우리는 그런 농촌들에서도 도시에서 일어나는 것과 동일한 문제들을 발견한다. 물론 농촌 지역에서는 문제들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차이는 있다.(10) 따라서 인구 과밀이 사회 문제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55. 미국 개척자들이 서부로 나아가던 19세기, 당시에도 인구의 이동으로 말미암아 대가족과 소규모 사회 집단은 붕괴되었다. 그 붕괴의 정도는 오늘날에 비해 결코 약하지 않았다. 사실, 수 마일에 걸쳐 이웃이 전혀 없으니 도저히 공동체에 소속될 방법이 없는 고립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핵가족을 선택했다.(11) 하지만 그렇다고 개척민들이 공동체의 붕괴 때문에 사회 문제들을 겪었던 것 같지는 않다.

56. 아울러 미국 개척자 사회에서의 사회 변화는 매우 빠르고 심오하게 이루어졌다. 법률과 질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상황에서, 통나무집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야생 동물의 고기를 주식으로 먹으며 성장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다가 노인이 되어서야 그는 제대로 된 직장에서 일하게 되고, 법률적 제재가 효력을 발휘하는 질서 잡힌 공동체에서 살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사회 변화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삶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오한 변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회 변화가 사람들에게 심리적 문제들을 일으켰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19세기 미국 사회에는 오늘날과는 달리 낙관적이고 자신만만한 분위기가 펴져 있었다.(12)

57. 우리가 볼 때 두 사회가 다른 점은, 19세기의 개척자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냈다고 느낀 반면(이는 상당히 정당한 논리다.), 현대인은 변화가 자신에게 강요되었다고 느낀다는(이 역시 상당히 정당한 논리다.)점이다. 개척자는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땅에 정착해 자신의 노력을 통해 그 땅을 농장으로 만들어냈다. 그 시절의 어느 군(County)에는 군을 통틀어 고작 수백 명의 거주자만이 있었고, 현대의 군보다 훨씬 더 고립되고 자율적인 집단을 이룰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개척자는 비교적 작은 집단의 일원으로서 질서 잡힌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는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공동체의 창조를 과연 진보로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개척자는 그런 공동체 창조 작업을 통해서 권력 과정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58. 급격한 사회 변화와 공동체의 친밀한 유대 관계의 상실을 겪으면서도, 현대 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광범위한 이상 행동을 보이지 않는 사회는 그 밖에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권력 과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통과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현대 사회의 사회적, 심리적 문제들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이것이라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에서만 권력 과정이 붕괴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문명 사회에서 권력 과정은 심하게든 약하게든 항상 방해를 받아 왔다. 그런데 유독 현대 사회에서는 권력 과정의 붕괴라는 문제가 특히 극심하게 벌어지는 것이다. 좌파, 적어도 최근(20세기 중반부터 후기까지)의 좌파는 권력 과정이 붕괴되면서 나타난 박탈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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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문단 52)(2016년 수정) 외부 사회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아미시(Amish) 같은 일부 수동적이고, 비밀스러운 집단 같은 부분적인 예외가 있을 수도 있다. 이와는 별개로, 몇몇 순수한 작은 규모의 공동체가 현재 미국에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청소년 조직폭력배와 사교(邪敎)들이다. 모두들 그들을 위험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실제로 위험하다. 이 집단들의 구성원들은 체제가 아니라, 서로에게 충성하므로, 체제가 그들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시들을 예로 들자면, 집시들은 절도나 사기를 잘 치는데, 그들은 언제든지 다른 집시의 결백을 위해 "증언"할 만큼 의리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Maas, 페이지 78~79를 참고할 것. 만약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집단들에 속한다면, 명백히 체제는 아주 심각한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관련 있는 사례들에 대해서는, 부록 7을 참고할 것. Carrillo, 페이지 46~47을 참고할 것.

10. (문단 54)(2016년 추가) 사실, 농촌 지역에서 문제가 덜 심각한지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우월한 작은 마을이라는 신화(The myth of small-town superiority)"(The Week, 10월 17일 2008년, 페이지 14)와 "뉴욕 주의 마인드(A New York state of mind)"(The Economist, 6월 25일 2011년, 페이지 94)를 비교해보라. 요점은 인구 과밀은 결정적 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11. (문단 55)(2016년 추가) 예시: "20세기의 남녀들은 (1830년대, 1840년대의) 미시시피 계곡과 대평원 주들의 농부들이 ‘사람이 너무 많다’고 느꼈음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농부는 자신이 일리노이 주 서부를 떠난 이유가 ‘사람들이 바로 자기 코 아래에서 살기 시작해서’라고 말했다. 그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 12마일 떨어져 있었는데도 말이다." Schlissel, 페이지 20 참고. Dick, 페이지 25 또한 참고할 것.

12. (문단 56) 그렇다. 우리는 19세기 미국이 심각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간략함을 위해 우리는 단순화된 용어로 표현했다.
    
원문출처: https://www.foxnews.com/opinion/was-the-unabomber-correct
저자: 키스 애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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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카진스키(aka 유나바머)는 1978년~1992년 폭탄으로 23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혐의로, 1998년 정당하게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어느 누구도 그의 테러리즘을 정당화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선언문 “산업사회와 그 미래”에 묘사된 그의 생각들은 무시할 수 없으며, 우리 사회가 자율성을 침식하는 정치적 힘과 기술에 의한 개인의 무력감을 향해 돌진해갈 수록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폭탄테러를 멈추겠다는 카진스키의 제안에 따라, “산업사회와 그 미래”는 1995년 9월 19일,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에 의해 출판되었다.

지금도 살아있는 카진스키는, 미국과 세계의 산업화로 인해, 그리고 기술에 대한 의존으로 인해,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을 실천하는 능력을 잃게될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정치적 “좌파”들이 기술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보았다. 그들의 “좌파”적 이념을 위해서는 중앙집권적 권력으로 인간을 통제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좌파”들이 심리적 장애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자신의 개인적 무기력감을 거대집단에의 소속감과 사회에 대한 통제를 통해 보상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카진스키가 사람들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의 생각은 많은 부분에서 정확했다.

수억명의 사람들이 페이스북으로 자아도취에 빠져 스스로를 TV쇼로 만들고 있는 모습을 카진스키가 본다면, 나는 그가 자신이 옳았음을 더욱 확신하리라고 장담한다.

평범한 미국인들이 마치 자기가 스타라도 된것마냥 자신의 일상생활을 “트윗”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는 자아를 자극하고 영혼을 갉아먹는 기술이 가져다주는 편안함에 감탄할 것이다.

일상적인 GPS 사용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는 지도 상에 표시된 길을 따라가는 것이 실제로는 현실에서의, 고속도로 뿐만 아니라, 인생의 방향감각을 침식한다는 점을 사람들이 알고는 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새롭게 등장한 구글 글래스는 사용자들로부터 세상을 분명히 바라보는 능력을 빼앗아갈 것이다. 카진스키는 차라리 감방의 쇠창살과 고독함을 선호할지도 모른다.

그는 적어도 이건 현실이기라도 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인터넷을 도구삼아 대선에서 승리한 버락 오바마의 정부가 미국 대중을 도청하고, 이메일과 휴대폰을 감시하고, 그들의 법률적 권리를 부정하고, 사람들을 무장해제하는 모습을 카진스키가 본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미국인들이 (바로 그가 예측했던, 기술과 좌파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인간 삶의 핵심인 그들의 개인성과 자율성이 위험에 처해있음을 알게할 수 있을지 궁금해할 것이다.

유나바머가 한 짓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그는 틀렸다. 자기 생각에 주목을 끌기 위해 사람들을 죽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함께 그의 생각까지 가둬버렸다. 특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들 사이에서, 언급불가능한 주제가 되었다.

글쎄, 나는 정치적 올바름보다는, 올바름을 추구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들이 연쇄살인범 테드 카진스키의 저서 “산업사회와 그 미래”를 읽어야할 시간이다. 그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와 나란히할 자격이 있다.
달콤한 기술엔 늘 예기치 못한 폐해가 있다는 점에선 공감하지만 기술의 영향력을 넘 과장해서 보는 것 같아요. Gps가 인생의 방향감각을 앗아간다면 나침반이나 지도라고 괜찮았을까 싶네요. 여러모로 1984나 멋진 신세계급은 절레절레 입니당.

배워갑니다

스크랩해서 자주자주 봐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법제업무 운영규정 제25조 ② 각 중앙행정기관의 장(중앙행정기관에 준하는 위원회 등으로서 총리령으로 정하는 위원회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은 훈령·예규등이 제정·개정 또는 폐지되었을 때에는 발령 후 10일 이내에 해당 훈령·예규등을 법제처장이 정하는 정부입법 관련 전산시스템에 등재하여야 한다. 다만,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어 전산시스템에 등재할 수 없는 경우에는 발령 후 10일 이내에 법제처장에게 해당 훈령·예규등의 제명(題名)과 비공개 사유를 통보하되, 법제처장이 요청하는 경우에는 해당 훈령·예규등을 문서로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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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업무 운영규정 제25조 ② 각 중앙행정기관의 장(중앙행정기관에 준하는 위원회 등으로서 총리령으로 정하는 위원회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은 훈령·예규등이 제정·개정 또는 폐지되었을 때에는 발령 후 10일 이내에 해당 훈령·예규등을 법제처장이 정하는 정부입법 관련 전산시스템에 등재하여야 한다. 다만,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어 전산시스템에 등재할 수 없는 경우에는 발령 후 10일 이내에 법제처장에게 해당 훈령·예규등의 제명(題名)과 비공개 사유를 통보하되, 법제처장이 요청하는 경우에는 해당 훈령·예규등을 문서로 보내야 한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① 공공기관이 보유ㆍ관리하는 정보는 공개 대상이 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3. 공개될 경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4. 진행 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와 범죄의 예방, 수사, 공소의 제기 및 유지, 형의 집행, 교정(矯正), 보안처분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그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

대검찰청 비공개 대상정보 세부기준(https://www.spo.go.kr/spo/info/information/info/information_open04.jsp)을 같이 봤을 때에는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3호, 제4호에 해당한다고 보아서 법제업무 운영규정 제25조 제2항 단서에 따라 공개하지 않기로 정하지 않았을까...싶다는 생각은 드네요.

헌법 위에 ㄸ...

초 더 쳐주세요.

가족이 없다면, 체포될 때 가장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에게 연락이 갑니다.
그 때 변호인 선임을 부탁하시는 게 최선이겠지요.

뭐... 일단 명분상으로는, 중형이 예상되는 경우에 피의자가 도주할 수 있으니까..
미리 이런 걸 막는다는 개념이긴 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이유는 아무래도 국민의 법감정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네요.
악질 아동 연쇄강간범...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받는다고 가정해보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요.

만일 가족이 없는 사람이라면 체포되고 난 이후 사선 변호인 선임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도무지 한국에서 구속이 죄의 경중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도주나 증거인멸이 없는 피의자는 모두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금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학교내 폭력은 학교자체 종결제를 도입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6&aid=0001435645

학교내 폭력은 학교자체로 종결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이야기이지만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실제로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잘못을 해도 전학이상의 처벌은 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학이 처벌이라면 전학생은 범죄자로 인식되어야 할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qpPXuQz8Uc4

지금까지 학교내 폭력이 실제로는 학교내에서 원만하게 해결된 사례가 드물고
심지어는 피해자의 자살로 이어진 사건들이 있었죠.
(학교에서 원만하게 잘 해결되어서 알려진 사례가 드물다는 이야기가 나올수도)  

그래서 경찰의 신고로 해결하거나 심지어는 사적인 해결을 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학교폭력은 사적인 해결이 가장 효과가 있더군요.

하지만, 학교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태에서 과연 학부모들의 동감을 얼마나 받아낼지 궁금해집니다.

특히  숙명여고 사건처럼 학교에 대한 저 신뢰를 확신으로 바꾸는 사건이 있다면 말이지요.  
  
지금의 부모세대들은 학교에 대한 신뢰가 아주 낮습니다.
뭐 저도 학교에 가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육을 받는 것인지,
매를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학생을 잘 때리는 열정적인 교사가 교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죠.  
그런 상황에서 신뢰를 떨어뜨리는 숙명여고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하였으니

문제는 신뢰인데,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힘을 잃을 수 밖에 없죠.  

그렇게 학교폭력 근절해야한다 말만 하고 실질적인 대책도 없으면서 오히려 피해자들 희화화하는 경우도 많은 대한민국이라 뭐 별로 놀랍진않네요.

학교든 군대든 어떤 조직이든간에, 불미스런 사건을 내부적으로 조용히 처리하겠다는 것은 대개 피해자에게 희생을 강요하여 아무 일 없었던 듯 넘어가겠다는 말과 동의어죠.

폭력 사건에 왜 학교란 말을 붙여서 학교라는 바운 더리 안에 가두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폭력 문제라고 생각하고 사법처리를 해야지 학생이라는 신분이라고 봐줘야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학폭위를 객관성 있거나 전문성을 띈 인사구성 하기도 힘들구요.

승진안된다고 은폐엄폐가 특기 아녔나요?

??? : 좋은게 좋은거 아이가?!

저게 왜 도입됐는지는 알겠더군요. 결국 학폭의 수위, 상황 판단이 문제인데 그냥 이걸 학교 외부 기관으로 온전히 이전시키는게 나을 거 같은데...

보자마자 이건 뭔 미친 소리인가 싶었는데... 뭐랄까 이젠 욕할 기력도 없네요.

한국 사회 전반에 신뢰라는 것이 실종되었어요. 아이들 다니는 학교까지 그렇죠. 그리고 신뢰가 깔려있지 않으면 어떤 제도도 어떤 캠페인도 답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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