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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근로자 월가동일수 기준 축소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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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익명 조회 991회 작성일 2021-02-16 10:45:4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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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게에 적었다가 수정, 추가하여 옮깁니다.

https://www.lawtimes.co.kr/Legal-News/Legal-News-View?serial=167959

종래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등에 있어서 근로자가 근무하지 못해 발생한
손해- 얻지 못한 소득을 의미하는 일실수입 산정시 월 가동일수는 22일로
인정되었습니다.

말하자면 1달동안 입원했어도 그 기간동안 일할 날은 22일이지 30일이 아니니까
도시일용노임 x 22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실수입으로 인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법 항소부에서 이 일실수입 산정기준인 월가동일수를
22일에서 18일로 변경하는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우리 주4일제 인가요?)

이는 사망사고나 장해를 입었을 경우 등 신체적 손해를 당한 저임금근로자들의
손해배상액을 크게 삭감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링크 판결의 경우, 원고 A씨는 2014년 왼쪽 무릎 관절염을 수술받는 과정에서
B씨의 의료과실에 따른 신경손상 등으로 근육이 약화돼 발목을 들지 못하고
발등을 몸 쪽으로 당기지 못한 채 발이 아래로 떨어지는, 일명 족하수 증상이 발생해
영구적 보행장애의 피해를 입게 되자 소송을 냈습니다.

1심은 일실수입 6,000만원을 포함해 치료비/위자료 포함 7,800만원의 원고 일부승소판결을 내렸는데
항소심은 이중 일실수입부분의 계산식을 월가동일수 22일에서 18일로 변경, 일실수입을 5100만원으로
산정하였습니다.

재판부는

"오늘날 우리 경제는 선진화되고 레저산업이 발달돼 근로자들도 종전처럼
일과 수입에만 매여 있지 않고 생활의 여유를 즐기려는 추세"

"월 가동일수 22일의 경험칙이 처음 등장한 1990년대 후반 이후로 2003년 9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주 5일 근무로 변경됐고, 같은 해 11월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돼
대체공휴일이 신설되는 등 법정근로일수는 줄고 공휴일은 증가했다"

"이는 정규근로자 뿐만 아니라 육체노동을 주로 하는 단순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일수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는 사회환경 및 근로조건의 변화라고 봄이 타당하다"

"고용노동부의 통계자료에 의하더라도 도시 일용근로자와 관련된
고용형태별, 직종별, 산업별 월 가동일수는 월 22일보다 감소하고 있고,
이러한 감소 추세는 단순히 국내외 경제적 상황의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오히려 그 폭이 확대되고 있다"

"근로자들의 수입은 물가상승률 등에 따라 매년 증가하고 있는 실정인데,
1995년부터 정부노임단가가 폐지되고 시중노임단가에 의해 일용노임이 산정되고,
최근 가동연한이 60세에서 65세로 상향된 점도 영향이 크다고 보인다"

"고용노동부의 통계자료를 반영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단순노무 종사자 비정규근로자와
건설업 근로자의 가동일수의 평균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월 18일을 도시 일용근로자의 가동일수로 정한다"고 판시했습니다.

--
중앙지법 항소부가 위와 같은 판결을 내렸는데..기분이 쎄합니다. 멀지않아 대법원에서
동일한 판결을 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군요. 저는 이에 반대합니다.

1) 근로자가 휴식과 레저를 늘리기 위해 일을 줄이는 것과 사고등으로 장해를 입거나
일을 할 수 없게 된 경우의 손해 판단을 연계시키는 것은 타당치 않고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선택]과, 할 수 없게되는 [불가능]을 구별해야)

2) 주5일제에서 판단되는 월 가동일수가 22일인 것이며, 대체휴일등이 월4일씩 될 정도로 늘어났다 할 수 없고

3)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일용근로자, 취약근로자의 일자리가 줄어들어 통계상 월 가동일수가 감소하고 있는 현상을
다시 취약근로자의 일실수입 산정에 불리하게 계산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 방식으로 계산한다면 실업률이 늘어나고 백수였다면 사고를 당해도 어차피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없었으니
배상할 손해도 없거나, 취업가능성을 확률로서 일실수입 산정에 포함시키는 계산도 가능할 것입니다.
본래부터 가능성을 추정하여 인정하는 손해입니다. 현상과 일치해야할 당위가 없는 것이죠.

4) 아울러, 공식 통계상 월가동일수가 금과옥조처럼 인정되어야 할 명확성/정확성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컨대 기존 다른 판결의 설시를 살펴보면

"일용근로자의 작업 내용이나 투입일수에 따라 사업주가 일용근로자의
근로내용 확인 신고를 철저히 하지 않을 수도 있고, 확인신고가 이뤄진 사업은
대부분 국가나 지자체가 발주한 대규모 공사인 것을 미뤄보면 C의 모든 근로내용이 신고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확인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월도 존재하는 점을 보면 실제 근로일수가 통계 근로일수보다 적다고 보기 어렵다"

와 같은 사정을 고려하여 가동일수를 22일로 산정한 예도 있습니다.
일용근로자들의 실제 근로일수가 통계 근로일수보다 많다고 평가해도 조리/경험칙에 합당하다는 것이죠.

* 사족을 붙이자면, 남성 일용근로자의 가동일수는 평균적으로 여성 일용근로자의 가동일수를 상회합니다.
종전에는 넉넉한 근로일수- 22일 인정되어 큰 쟁점이 되지는 않았지만 18일을 기준으로 다툼이 일어난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논변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5) 굳이 말한다면, 도시일용노임 기준 손해배상이 실제 피해자의 수입보다 많은 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피해발생시 배상판결에서 위자료나, 소송비용이나, 기타 산정하기 어려운 손해들이 충분히 배상되고 있었습니까?
법정에서 명확한 계산을 하기 어려운 손해는 항상 존재하고, 이를 대체하기 위한 추정치가 항상 고려되기 마련입니다.
일실수입의 가동일수 판단에 다소 피해자에 유리한 추정이 존재한다한들 기타 산정되지 못한 손해들이
넘치게 보전되어왔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가끔 이야기합니다만 부조리와 부조리가 상쇄되어 조리를 이루는 일은
있기 마련이고 그 와중에 한쪽의 부조리만 제거하는 것은 개선이 아니라 개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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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가동연한이 60->65세로 연장되어 증가한 손해배상액에 비해
모든 피해자의 월가동일수가 22->18일로 변경된 결과 사고발생시
취약근로자/파트타임근로자/미취업자들에게 인정될 피해배상액은 큰 폭으로 감소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도시일용노임이 적용되지 않을 고소득자들에게는 아무 문제없는 일이지요.
월평균소득을 입증함으로써 월가동일수 산정따위는 필요가 없으니까요.
정년도 그렇고 이런걸 왜 판례가 정하는지 모르겠어요.

노가다 기준으로 하면 월 20일 이상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게 맞긴 하다고 봐요.
근데 노가다 근로자가 휴식? 은 그렇다치고 레저요?
또 물가 오르는 동안 노가다 근로자 일당은 얼마나 올랐을까요?

따질 거면 제대로 따져야지, 판사가 한쪽 주장만 쏙쏙 골라서 해버리는데 판사인지 변호사인지 분간이 안 가네요.

월스트리트의 동일수가 뭘까 하면서 들어온 나새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주 6일일하는데 난 북한인?

대체휴일 월평균 4일..? 내가 한국사는게 맞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노다가를 월 20일 이상 하시는 분이 거의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틀린말은 아닌 것 같은데, 아쉽기는 하군요.

    
소제목으로 어그로 좀 끌어봤습니다. 그래도 이야기는 구체적인 사례로 나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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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회학자들은 물질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아요. 일단 몸부터가 중요해요. 몸은 인종, 젠더, 장애와 같은 차이를 빚어내는 것으로 간주되요. 우리의 의사소통을 보다 다수에게 전달되도록 증폭시키거나, 돕는 미디어도 다른 예에요.

하지만 요 글에서 여러번 비판의 대상이 될 사회적 구성주의는 몸이나 미디어를 사회적 구성물(social construction)으로 받아들여요. 몸, 미디어가 인간의 관계, 동기, 이해관계 등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초점을 맞추거든요. 그리고 자신들의 이론 속에서 물화(reification)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적 구성물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포괄하지요.

물화는 복잡한 개념인데 우리가 물질적인 것들을 비물질적인 것들로 취급할 때 써요. 구글 검색을 해보니 딱 좋은 예로 커플링이 있네요. 커플들이 아이템을 장만하는 이유는 그것이 추상적인 사랑을 현시적인 형태로 증명하기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물화의 문제는 우리가 커플링을 사랑을 위한 한 방편으로 보지 않고, 커플링=사랑이라는 도식만을 머리 속에 콕 박아버렸을 때 생기지요. 사랑을 주고 받고, 증명하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커플링만을 바라보면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이 전도되지요. 모든 개념이 그렇듯이, 각 이론에서 물화를 어떤 함의를 지닌 것으로 활용하느냐는 각기 달라요.


[물론 커플링은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커플링은 물화이지만, 커플링을 함부로 취급하는 것은 물화가 아니거든요]

역사적 유물론은 사회적 구성주의가 이해하는 물화를 비판해요. 역사적 유물론 입장에서 보기에 인간의 상호작용에만 초점을 두는 건, 물화를 정신의 착각 정도로 격하하여 생각하는 셈이거든요. 역사적 유물론 입장에서 볼 때 물화는 추상화의 실천(practice of abstraction)에 따른 결과여요. 이제 다시 나왔네요. 추상화의 실천.

저자가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자료를 찾아봤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추상을 그대로 대입하여 첫쨰로 이해하면 되요. 개별적인 것들로부터 공통적인 것을 추려서 구체에서 일반으로 사상(捨象)하는 과정이 추상화잖아요. 근데 지난 글에서도 정리했듯이 앞에 실천(practice)라는 관점이 등장합니다. 일단 실천이라는 말이 앞에 붙은 순간부터 우리는 선험적인 무언가를 버려야 해요. 추상화를 하더라도 역사/사회적인 조건 속에서 추상화를 한다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맑시즘 하면 뭐겠어요. 19세기 사회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것이잖아요. 당대 사회를 자본주의(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의)라 파악하고, 생산 양식(mode of production)의 사유화를 그 정수라 뽑아냈지요. 역사적 유물론에서 바라보는 자본(capital)은 이와 같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추상화 방식이에요.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자본은 이해관계와 본질적으로 연관을 맺어요. 추상화의 실천조차도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요.

하지만 맑시즘에서 볼 때 의도, 동기, 이해관계 사이의 관계는 자율적인 인간들의 행위주체성(agency)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지 않아요.


[헤겔니뮤. 저자가 맑시즘을 세세하게 구분하여 접근하는 반면, 헤겔이나 포이어바흐는 조금 후려친다(?) 싶을 정도로 거칠게 접근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일단은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역사적 유물론은 대개 헤겔 변증법적 관념론의 안티테제로 기술되요. 절대정신(Zeitgeist) 짱짱, 역사의 자기실현 헉헉 이게 아니라, 모든 존재가 발을 딛고 있는 실재성부터 시작하자는 거예요. 근데 여기까지는 맑스/엥겔스 전에 포이어바흐가 도달했고, 오히려 맑스/엥겔스는 포이어바흐의 관점을 비판했대요. 좀 머리가 아파오는데. 요 두 사람은 포이어바흐가 단순히 헤겔의 생각에서 물질-정신의 관계를 역전시켰을 뿐이라 비판했어요. 말인즉슨, 포이어바흐 같은 사람들은 초월적인 관찰자(transcendental observer)의 입장에서 "그래그래 먹고사는 건 중요하지"하고 바라보고, 그걸 물질을 강조하는 걸로 생각한다는 거예요. 정작 자기는 노동을 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어떠한 비용도 지불하지 않으면서요. 이건 단순히 현장에 발을 담그고 있지 않으면 샷다마우스 하라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주장할 때 그걸 팩-트-폭-력 같은 식으로 정당화하고 자기는 아무런 이해관계 없는 양 하지 말라는 거라 생각해요. 우리는 초월적인 관찰자일 수 없어요.


[정몽준의 버스비 70원 인식은 당연히 정몽준의 삶과 분리하여 이해할 수 없지요]

맑스/엥겔스 입장에서 포이어바흐는 역사적으로/변증법적으로 생각하는데 실패했대요. 생각하기는 우리 눈앞의, 어제 오늘 내일의 일상에 뿌리를 두는 실천(practice)이여요. 사람이 생각한다는 것은 한 영역(종교)에서 다른 영역(개인의 종교적 믿음)으로 관념이 전파되는 고정된 과정이 아니에요. 일상 속에서 각 개인이 세계에 영향을 받고, 세계에 영향을 주면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과정에서 임시적으로 나타나는 결과거든요.

변증법은 어떤 고귀하거나, 명상에 잠긴 관점들 간의 충돌이 아니에요. 역사적이고 물질적인 추상화의 실천들이지요. 이미 구성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우리의 조건을 조형하는 과정은 - 니체는 이걸 권력에의 의지(the Will to Power)라 불렀지요 - 단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갈등과 투쟁의 결과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포이어바흐가 초월적인 관찰자인 체 한 것은, 자신의 추상화 실천이 어떠한 이해관계를 정당화하는지 책임지지 않은 셈이래요.

160년 후에 라투르도 마찬가지의 주장을 했어요. 라투르의 공격 대상은 사회학자들이였어요. 라투르의 눈에는 사회학자들이 실제 사회가 눈 앞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찰하지 않고, 이론을 끌어다가 마구잡이로 여기저기 적용하는 것 같았나 봐요. 특히 비판 사회학자(critical sociologists)라 불리는 일군의 학자들이 사회적 설명(social explanations)을 더 중시한 나머지 경험적으로 드러나는 현실적인 요소들을 너무 쉽게 무시했다고 비판해요. 이 사회적 설명에는 폭로(exposure)를 위해서 비가시적이고 구조적인 조건만 가지고 특정한 실천의 논리를 추출하는 독해방식이 포함되어요.

[본문에는 없는 예이지만, 이 내용을 읽으면서 현재 한국의 젠더 이슈가 떠오르더라고요. 일군의 학자들은 비판사회학적 관점에서 흔히 메갈리아/워마드 (이런 지칭도 그렇게 적절하다 느끼지는 않아요)로 호명되는 세력이 보여준 공격성을 해석했어요. 미러링(mirroring)이라는 용어를 새롭게 만들어서 겨냥한 것은 바로 폭로의 효과였다 느껴요. 제가 여기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운영자의 이해관계로 침묵을 택하겠습니다 ㅋ_ㅋ 아마 다수와는 또 다른 입장일 거예요]

저자는 사회학 일부에 만연한 접근 방식을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선언(the price-not-paid manifests)이라고 표현해요. 한 현실에 대한 설명에서 다른 현실에 대한 설명으로 똭 하고 이동하는데, 그 중간 과정은 설명하지 않는 것이요. 포피어바흐, 비판사회학자들도 있지만 멀리멀리 거슬러 올라가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를 비판해요.


[동굴의 우화]

왜냐면 동굴의 우화는 어째서 소크라테스가 벽에 묶여있던 족쇄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거든요. 그냥 풀려났다고 가정했을 뿐이에요. 풀려난 소크라테스는 이데아의 빛을 경험하고 돌아올 수 있지만, 다른 죄수들에게 자신이 본 현실을 받아들이게 할 수는 없어요. 정치적 현실주의가 돌아오는 거지요. 이러한 흐름에서 플라톤의 유비는 관념론이 지닌 논리적 불가능성을 증명해요. 상대도 경험할 수 있는 일련의 사건들과 연관하여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지 않는 한, 당신은 다른 사람이 당신을 따르도록 할 수 없고, 집단을 만들 수 없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어요. 플라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이자 철학자인 자신을 따르라 요청하지요. 왜냐, 자신은 편견과 오개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철학자니까요.

고럼 이제 자연스럽게 나오는 질문이 있죠. 맑스, 엥겔스, 라투르 등은 뭐가 다르냐는 거예요. 나를 믿고 따르라!는 같은 거 아냐?는 생각이 떠오르겠지요. 맞아요. 따르라는 설득은 같아요. 근데 믿고 따르라는 얘기는 안 한대요.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설명하는 점이 다르다네요.

맑스/엥겔스에게 그 방법은 추상화의 실천이였어요. 아까 추상화의 실천은 역사적이고 물질적이라고 했어요. 이거는 "우리가 어떠한 상황을 현실이라 가정하면,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현실이 될 것이다"라는 주장과는 달라요. 이거는 여전히 정신과 현실 사이의 이분법을 깔고 있거든요. 반대로,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어떠한 방식으로 정의하는 그 자체가 현실적인 거예요. 그리고 이러한 정의는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아요. 우리가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실천의 조건들은 언제나 우리가 사물들의 한 가운데로 던져지기 전에 존재해요. 우리의 관점은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니까요.

사회적 구성주의는 물질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물들은 역할이 없거든요. 사회적인 것은 개인의 자아(cogitos)들이 독점하고 있는 영역이고, 사회적 구성에 사물이 끼어들 공간은 없어요. 그렇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역사적 유물론에서는 사물의 역할이 있다는 식으로 이해해야겠지요?

역사적 유물론에서 인간이 역사를 만들지만 그 조건을 선택할 수는 없는 까닭은 바로 물질성 때문이에요. 우리의 의지만 가지고는 변형되지 않는 물질들이요. 을 예로 들어볼게요.

회원들은 타임라인에 하루 4개까지 글을 올릴 수 있어요. 회원들의 타임라인 활동은 남은 타임라인 개수가 몇 개 있는가에 영향을 받아요. 자정 전에 남은 탐라권을 소모하려는 모습들이 자주 보이지요. 탐라권의 개수 제한은 토비님이 php 코드를 짜서 제한한 결과여요. 즉, 타임라인이라는 공간은 토비님의 노동을 통해 만들어졌고, 회원들의 행동은 거기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아요(사물성은 사물화하는 물질적 실천의 결과이다 Objectivity is a consequence of material practices of objectification)


[자정이 다가올 수록 글을 많이 올리는 이유는 갬생충만도 있고, 자기 전 탐라도 있겠지만, 자정 전에 털어버려야 한다는 압박감도 가설로 제기할 수 있지요. 2년 전에 조사했던 자료입니당]

타임라인의 개수 제한을 뚫는 방법은 없지요. 왜냐? 컴퓨터 코드라는 것이 특정 조건에 따라 0/1의 결과를 리턴하도록 짜여져 있으니까요. 제가 정말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고 빌고 빌어도 4개가 끝이에요(사물은 그 물질성 때문에 저항한다 Objects resist because of their materiality).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게시글을 4개로 제한하는 사이트 내 운영 지침은 코드가 없으면 강제성이 약해지지요(제도는 그 물질성을 통해 규제한다 Institution regulate because of their materiality). 그리고 횐님들은 타임라인 게시글 4개라는 상황을 당연스레 받아들여요. 하지만 타임라인 게시글 제한이 영원히 4개이리라는 법은 없지요. 지금도 이전에 3개였다가 늘어난 것이고요. (운영진을 포함하는) 이 사이트 구성원들이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그 필요에 따라 토비님이 php 코드를 바꾸는 노동을 한다면 탐라 갯수는 달라질 수 있는 거지요(특정한 상황들이 결과적으로 현실이 되는 것은, 그것들을 현실로 정의하는 것이 물질적인 실천일 때이다 Situations becomes real in their consequences only if defining them as real is a material practice).

타임라인은 물질적 공간이자 사물이에요. 횐님들이 그 안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실천 practice)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원들 간의 상호작용만 관찰해서는 답이 안 나와요. 이 공간의 물질성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인간이 이 물질성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을 포괄해서 봐야지요.

비근한 예를 들었으니 자본 이야기로 마무리 해 볼게요. 자본은 생산 관계를 추상화 한 귀결이여요. 그리고 그 자체는 우리의 현실을 변화시켰고요. 사용가치와 별개인 교환가치가 생성된 것은 개인간 경쟁 때문에 나타난 자연적인 결과가 아니에요. 특정한 이해관계가 다른 이해관계를 비용으로 지불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추상화 해가는 실천으로 봐야지요. 이 실천은 무작위적인 해석이 아니라, 자신들이 종사하는 이해관계의 구체성을 조형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의미를 획득해요. 의지, 동기, 능력같은 개념과 연관해서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는 "이해관계" "독립성" 같은 개념도 연관해서 생각하고요.

"구성원성"이라고 하면 주체성보다는 다소 누그러지긴 하는데 여전히
"원"에서 잘 납득이 되진 않아요. "구성요소"라고 하면 납득이 될텐데
그런 개념은 ANT까지 갈 이유가 없는 것 같아서요.

ㅎㅎ 사실 3부에서 답해주실거라고 미리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떠오른 의문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달아놔서 재촉한 것 같네요.
3부를 기다리겠습니다. :)

그 점을 계속 짚어주시고 계시고, 3부에서 자세히 그 함의를 다루기는 할텐데요.

정성스레 질문을 해주셨는데 그냥 "3부 보세요!" 답하는 건 아니라 생각해서, 타임라인 사례를 바탕으로 말씀하신 부분을 좀 다루어볼게요.

일단 요러한 이론의 발전이 계속 이전 이론의 논리적 한계에 대한 비판, 세계에 대한 더욱 적절한 설명 등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넘어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여러 분과학문의 이론에서 최근 두드러지는 변화는 문화적 전환(cultural turn)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물질론적 전환(materiali... 더 보기
그 점을 계속 짚어주시고 계시고, 3부에서 자세히 그 함의를 다루기는 할텐데요.

정성스레 질문을 해주셨는데 그냥 "3부 보세요!" 답하는 건 아니라 생각해서, 타임라인 사례를 바탕으로 말씀하신 부분을 좀 다루어볼게요.

일단 요러한 이론의 발전이 계속 이전 이론의 논리적 한계에 대한 비판, 세계에 대한 더욱 적절한 설명 등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넘어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여러 분과학문의 이론에서 최근 두드러지는 변화는 문화적 전환(cultural turn)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물질론적 전환(materialistic turn)이 나타난다는 점이래요. 제가 처음 뉴스기사를 링크하면서 읽으면 좋아하겠다고 느꼈던 횐님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루카포드님이셨어요. 왜냐면 직업적으로 [실체적 진실]을 찾아야 하는 의무를 따르시고, 언어/담론/심리에만 기대어 세상을 이해할 때(문화적 전환) 생기는 문제들에 이전부터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신다 느꼈거든요.
(물론 discurse theory 관련된 내용을 좀 살펴보니 "담론"에 대한 세간의 이해도 편향되어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던데, 요거는 이야기 주제가 너무 달라지니 제외할게요)

물질성에 대한 강조는 ANT 뿐만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진행되어오는 흐름이고, 그 이론들 모두가 같은 포지션을 취하지는 않아요. 비인간행위자의 주체성, 구성원성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건 ANT라 알고 있어요.

주체성(agency)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좀 달라질텐데요. 법학에서 바라보는 주체성을 그대로 적용하시는 것은 아니겠지만, "의지, 동기, 능력"과 같은 개념과 연관하여 주체성을 바라보시는 것이 아닐까 느꼈어요. 다르게 생각하신다면 알려주세요.

ANT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주체성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제도/질서에 "함께 참여한다"는 점이거든요. 주체성이 아닌 구성원성에 관한 이야기로 생각해주시면 조금 더 생각하시는 모순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함께 참여한다고 했을 때 사물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는 별개로 각각의 사물이 자신의 논리를 따르는(돌과 물이 다르듯이) "저항"의 형태로 상황에 참여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확해요.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추상적인데... 3부에서 게약서 서명을 둘러싼 ANT적인 설명 이야기를 다루면 여전히 의문은 남으시더라도, 조금 더 말이 된다 느끼시지 않을까 싶어요. 요 "저항" 이야기는 [과학하기]에 대한 라투르의 관찰과 설명까지 넘어가야 하는데, 이번 글에서 거기까지 다루지는 못할 듯듯해요.

타임라인의 비유로 넘어오면(사실 타임라인 이야기는 역사적 유물론보다는 ANT에 연결하기 더 쉽습니다 ㅎㅎ), [탐라4개제한코드로 회원들의 활동에 영향을 주는 건 토비님이신거지, 코드자체는 객체일뿐 주체가 될 수 없는거죠]라는 말씀을 받아들이더라도, [탐라 4개 제한코드 - 프로그래밍 언어(은 php) -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해 작동하는 컴퓨터 - 각각의 컴퓨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망 등등등...]이 없으면 "탐라 4개 제한"이라는 제도나 상황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에 초점을 두어서 봐주시면 고맙겠어요. 주체성이라는 논쟁적인 개념은 좀 더 세세한 논의가 필요하겠고(인간에게 과연 주체성이 있는가? 또한 어려운 주제니까요 ㅎㅎ). 우리 옆에서 작동하는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 외에 사물들의 역할을 재조명할 수 밖에 없다. 즉, 인간 사회는 인간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지점에 합의할 수 있다면 일단 제 목표는 달성입니당

모든 도구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각 도구는 [노동]을 통해 인간의 의지와 목적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 초기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부각되는 내용이에요. 저는 마르크스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는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겠는데, 역사적 유물론에서 비인간객체들의 지위를 뒤에서 말할 ANT처럼 적극적으로 인정했다고 느끼지는 못했어요.

아래 목적지로 가기 위해, 종래에는 90%의 사람들은 우측으로 가서 횡단보도를 이용하고 10%의 사람들은
무단횡단을 통해 단거리로 이동을 했어요.

그런데 새로 횡단보도가 하나 더 생김으로써, 좌측 상단에서 하단 목적지로 가는 사람들은 종전
무단횡단을 하던 장소에 생긴 횡단보도를 이용해서 100%저 길을 이용하게 되었죠.

그 결과, 두 횡단보도 사이의 통행량은 줄어들게 될거에요. 저 그림의 길이 먹자골목 같은 곳이었다면
횡단보도 사이의 식당들은 매출이 줄어드는 영향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과... 더 보기
아래 목적지로 가기 위해, 종래에는 90%의 사람들은 우측으로 가서 횡단보도를 이용하고 10%의 사람들은
무단횡단을 통해 단거리로 이동을 했어요.

그런데 새로 횡단보도가 하나 더 생김으로써, 좌측 상단에서 하단 목적지로 가는 사람들은 종전
무단횡단을 하던 장소에 생긴 횡단보도를 이용해서 100%저 길을 이용하게 되었죠.

그 결과, 두 횡단보도 사이의 통행량은 줄어들게 될거에요. 저 그림의 길이 먹자골목 같은 곳이었다면
횡단보도 사이의 식당들은 매출이 줄어드는 영향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과 물질성은 상호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차피 그 물질성을 만들어낸 것은 인간인 것이고, 판단에 필요하기 위해
"관찰"해야 하는 현상이라는 것과 주체성이나 구성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논리의 비약이란 말이죠..

탐라4개제한코드로 회원들의 활동에 영향을 주는 건 토비님이신거지, 코드자체는
객체일뿐 주체가 될 수 없는거죠.

주먹으로 머리를 때림
망치로 머리를 깜
자동차로 들이 받음
목줄없이 데리고 나온 개가 아이를 뭄
토니스타크가 만든 울트론이 소코비아를 추락시킴

넵, 그것조차도 물질로 봅니다 ㅎㅎ 이래서 참 번역이 어려워요. Material이라는 단어로 전달하고자 하는 범위는, 한국어로 "물질"을 떠올릴 때 생각하는 범위랑 다르니까요. 감사합니다!

과연 코드/데이타는 물질인가... 라는 아주 쓸데없는 질문이 떠오르긴 하지만...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해요!

네네, 말씀하시는 지점은 미디어 이론에서 강조하는 지점이고,

다음에 올릴 ANT가 루카포드님의 질문이기도 한 "사물의 저항"을 적극적으로 인정했을 때 얻는 이득이 무엇인가?를 보다 뚜렷하게 보여줄 거여요.

이 글에서도 언뜻 언급했지만 포인트는 영향을 주고 받는다를 넘어서, [인간들]만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생각하면 그런 차이가 존재하고/지속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인 듯해요.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또, 중국에서 태어난 사람과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 등등이 다 그 삶에 있어서 느낀 바가 다르기 때문에 그 추상화로써 가지는 가치관이나 기타 등등 생각도 기질적으로 다를것이고..

똑같은 주제의 정치적 담론이라도, 인스타그램에서 논할때랑 트위터에서 논할때랑 싸이월드에서 논할때랑 페이스북에서 논할때랑 동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논할때랑 가족과 이야기할때랑 유튜브에서 이야기할때랑 광장 연설에서 이야기할때랑 국회 청문회에서 이야기할때랑 다 다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정신과 정신적 교류가 물질적인 커뮤니케이션 구조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관련하여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홍콩은 여타 대륙중국의 도시들과는 다르게 구마다 자치구회가 있어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하아... 침사추이 가고 싶다

현실은 일국양제라도 유지되면 다행이라ㅠㅠㅠ
홍콩보면 10년 뒤에 어떻게 될런지ㅠㅠ

경범죄자만 수감, 직장 출퇴근 허용 … 개방교도소 연다
https://news.joins.com/article/22966461

[취재일기] 교도소, 패자부활전의 장이 돼야 늘리는 것이 잘 안되는 현실이니 이렇게라도 수용 인원수를 줄이려는 것이겠지요...

진짜 이렇게 되고나면 군대는..

방향은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형이 어떤 경우 나오는지 생각해보면........
금고형 선고된 과실범이면 인정합니다.

그건 그렇고 도입되면 군대는 확실히 교도소보다 못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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