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대사회는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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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익명 조회 3,288회 작성일 2021-01-06 15:48:0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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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기술 문명은 지난 250여년간 경이로운 업적들을 이루어냈다. 화학비료 덕분에 식량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지난 수천년간 인류가 결코 극복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배고픔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항생제, 백신 등의 의학기술 덕분에 영아 사망률은 극적으로 낮아졌고, 평균수명 역시 증가했다. 고속 이동, 통신 기술 덕분에 국가들은 부강해졌다. 감시카메라 기술 덕분에 범죄율은 낮아졌다. 선진국에 태어난 우리는 가장 풍요롭고 안전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동물원의 동물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동물원 관리자들이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라는 전제 하에, 동물원의 동물들은 영양가 있는 식사를 보장받으며, 아플 때는 치료받을 수 있고, 천적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며, 심심하지 않도록 적절한 놀이감들을 제공받는다. 그 대가로 그들이 요구받는 것은 단 하나다. 인간의 지시에 복종할 것. 복종에 대한 보상으로 그들은 야생에 있는 동족들보다 오래 산다. 그들은 더 이상 사냥감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더 이상 맹수에게 잡아먹힐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인간에게 종속되어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의 모든 측면은 인간에 의해 결정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기회를, 자신의 존엄성을 박탈당한 것이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인간의 보호 하에 안전한 것처럼, 현대의 선진국 시민들 역시 공권력의 보호 덕분에 전근대사회, 수렵채집사회에 살았던 그들의 조상들보다 훨씬 안전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안전함은, 다수의 개인들을 무장해제시킨 후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무균실을 만들어 얻은 것이다. 무균실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아이는 적절한 면역력을 형성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이 아이는 앞으로 평생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다. 이 아이는 자신의 존엄성을 박탈당한 것이다. 체제는 다수의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키고 그들의 보호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므로써 첫째, 사람들로부터 권력을 박탈하며, 둘째,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지켜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할 기회를 박탈하며, 셋째 존엄성을 박탈한다. 물론, 설령 체제가 자신을 무력하게 만들지라도, 체제의 보호 하에 안전하게 사는 것이 좋다며 현대 사회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동물원의 동물들 역시 나름의 만족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미국 남부의 흑인 노예들 중에서도 자신의 처지를 긍정하던 노예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상태가 존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모든 인간에게는 생리적 욕구가 있다. 수렵채집인들은 이러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행사해야만 했다.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와 같은 상위차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전근대 문명 역시 인간을 억압했지만, 기술의 한계로 인해 제한이 있었고, 사람들에게는 어느정도의 권력이 주어졌다. 폭압이 지나칠 경우, 목숨을 걸고 탈출을 할 수도 있었고,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사람들로부터 권력을 박탈한다. 또한 생리적 욕구들은 권력 행사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종의 대가로서 주어진다. 극소수의 행운아들만이 존경,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충족시킬 기회를 박탈당한채 정부, 군대, 학교, 회사의 지시를 일방적으로 따르며 다람쥐 쳇바퀴 굴리는 삶을 강요당한다. 우리 사회에 무력감이 만연하다는 것이 놀랍지가 않다.

유능한 사냥꾼, 목수, 석공, 도공, 대장장이가 됐을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 어린시절 12년간 자신의 적성과는 무관한 수학, 과학을 공부할 것을 강요당하고, 성인이 된 후에는 회사생활을 할 것을 강요당한다. 심지어 이들 중 대부분은 자신에게 그러한 적성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를 것이다. 이 직업들은 과학 기술의 발달과 산업화로 인해 도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하며 많은 이들의 직업과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공부 꽤나 했다는 양반들은 실업자들에 대한 재교육, 또는 기본소득제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유능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재교육을 통해 코드나 짜라, 혹은 정부가 던져주는 기본소득이나 주워먹으며 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인격에 대한 중대한 모욕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이 잃는 것은 직업, 생계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 긍지, 존엄성을 빼앗기는 것이다.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할 권력을 빼앗겼을 때, 자신의 긍지와 존엄함을 짓밟혔을 때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명예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을 기억한다. 빼앗긴 권력을 되찾기 위한, 짓밟힌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설령 폭력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이는 정당할 뿐만 아니라, 정의롭고 신성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며 폭력을 비난한다. "하지만 폭력으로 죽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죽는다. 폭력을 비난하는 이들은 폭력을 비난하는 만큼 교통사고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이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보다, 폭력으로 인한 죽음에 훨씬 흥분한다는 점은, 그들이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폭력을 싫어하는게 아니라, 폭력 그 자체에 대한 반감 때문에 폭력을 싫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시어도어 카진스키, Progress versus Liberty)

"현대 사회는 사람들이 폭력을 두려워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프로파간다를 사용한다. 기술-산업 체제는 체제의 질서정연한 기능을 해치지 않을 소심하고, 유순하고, 수동적인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전적으로 물리적인 힘으로부터 나온다. 사람들에게 폭력은 나쁜 것이라고 (물론, 예외적으로, 체제 자신이 경찰, 군대를 통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괜찮다고) 가르침으로써, 체제는 물리력을 독점하고 권력을 유지한다."(시어도어 카진스키, Letter to a Turkish anarchist)

앞으로 등장할 기술들 중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유전공학과 인공지능 기술이다. 인공지능은 기업과 정부의 손아귀에 들어가 소수 엘리트들의 권력을 공고히하는데에 쓰일 것이다. 반체제 운동을 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인공지능은 반체제 인사들의 전략들을 모두 내다보고 대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공학 기술은 유전자 조작된 괴물들을 양산할 것이다. 이 괴물들은 인간보다 훨씬 체제에 쉽게 적응할 것이다. 인간은 이 괴물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도태될 것이다. 이 혐오스러운 현대 기술-산업 체제는, 이대로 내버려둘 경우 끊임없이 성장해서 지구의 모든 것을 먹어치울 것이다. 글 올려주실 때마다 읽고 있는데... 그래서 결국 기술-산업 체제를 어떻게 무너뜨릴 것이며, 그렇게 무너뜨린 다음에 세상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그럴듯한 이야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높으신 분들에게 휘둘리는게 싫은 것이라면 스스로 높으신 분이 되는 편이 현실적이고, 체제를 극복하고 싶은 것이라면 단순히 무너뜨리고 이전 시대로 퇴행하는 것 이상의 비전과 방법이 있어야 할텐데 그런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선사시대 이전부터 내려오던 생계에 대한 부담을 기본 소득으로 극복하고, 대리활동으로 자아실현 하는데 집중하는게 더 존엄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저 높으신 분들이 신과 같은 권력을 누리며 이 세상과 내 몸뚱이, 내 정신을 마음껏 주무르는 동안 기본소득 주워먹고 오락이나 하면서 만족하라는 소린데, 전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몽골과 아즈텍은 많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학살했지만, 적어도 어린이에게 항정신성 약물을 처방하고, 인간 유전자를 연구할 생각은 안했죠. 선사시대는 만인 대 만인이 투쟁하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아직 제국이 등장하기 전이었기에, 몽골이나 아즈텍처럼 대량학살을 자행할 수도 없었습니다. 몽골과 아즈텍이 대량학살을 자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에게 제국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말씀하신 몽골과 아즈텍의 대량학살 사례는 제 논지를 오히려 강화시켜주는 사례에 속합니다.

위쪽을 좋아하시기에 선사시대부터 이야기 했어요. 뭐 몽골군의 수십차례 학살이나 아즈텍의 피의 제국 같은 이야기 할까요?;; ㄷㄷ

대량살상무기는, 어느날 갑자기 짠하고 나타난게 아니죠. 그걸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산업폐기물과 방사능 폐기물들이 발생했을 겁니다.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걸 유지보수하기 위해 또 오염물질들이 양산되죠. 이로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야생동물들과 인류 전체가 부담하게 되고요. 반면 국가권력은 지나치게 강해지고 이렇게 강해진 국가권력은 극소수 엘리트들의 이익과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에 쓰입니다. 반면에 평범한 개인의 권력은 더욱 약해집니다.

산업혁명 이전의 세상이 그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였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현재의 국가 보다 살상이 적을것 같진 않습니다. 대량살상무기를 가졌다는것과 대량 살상을 한다는건 다른 이야기구요.

나무 창과 돌로만든 곤봉으로 무장하고 있는 원주민은 무섭습니다. 이분을 놀라게 하면 머가리가 깨져 죽을 수도 있어요. 이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원주민 부족은 훨씬 무섭습니다. 하지만, 자동소총과 기갑, 항공전력과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한 국가권력이 자행하는 살상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 수준입니다.

예전부터 생각하던 화두가 있읍니다. 사실은 비인간적으로 닭을 사육하는 방식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조금 바꾸면,
1) 과학자와 기업가들은 산업폐기물을 생산하면서 난방연료를 10$에 판매합니다.
2) 친환경 공법으로 바꾸면서 산업폐기물과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대신 난방연료는 11$이 되죠.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어린이 5만명이 난방연료가 모자라서 죽게됩니다.
어느 쪽이 나은 선택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탄소배출이나 환경오염에 관심을 가지는건 선진국 사람들인 이유는 있는것 같습니다. 지난 백년간 잘도 오염물질을 뿜어낸 걔들이요. 그리고 산업화나 과학기술만의 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

유나바머 ㅋㅋ 내 이웃의 머가리를 깰 수 있다고 존엄성이 회복되는건 아닌것 같아요. 여러명의 머가리를 박살낸다고 유능함을 증명하고, 그런 나를 다른사람이 두려워 한다고 권력이 생기는것도 아니구요.
오히려 선사시대 이전부터 내려오던 생계에 대한 부담을 기본 소득으로 극복하고, 대리활동으로 자아실현 하는데 집중하는게 더 존엄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 측에서 더 이상 벌목을 하지 않고, 산업 폐기물을 배출하지 않고, 탄소배출을 중단하고, 과학 기술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한다면 홀로 야생에서 살아가는 것도 괜찮겠네요.

(수정) 생각해봤는데, 제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깔끔하게 산업폐기물, 방사능 폐기물을 과학자, 기업가들 집에 버리는 것으로 쇼부봅시다. 과학기술, 산업화 좋아하시는 양반들이니 그 결과물도 좋아하시겠죠.

사회가 원하는 공부만 하는 기계로 살다가 수능 다 보고서 20대에 들어서서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시야가 트이면서 나와 맞는 재능이 공부가 아닌 다른 것이였다는걸 깨닫는 순간의 그 공허함과 다시 제자리부터 시작하기에는 너무 멀리 나와서 결국 재미도 흥미도 느끼지 않는 자격증 따기, 스펙 쌓기를 해오다가 화이트 칼라의 길에 진입하여 회사와 기업체의 톱니바퀴 부속품으로 살아가다가 20대에 깨닫고 포기하였던 내가 좋아하는것을 너무 늦었지만 제자리에서의 시작을 선택 하시는 분들과 그냥 계속 해오던 부속품으로 살아가며 안전한 삶을 선택하는 분들이 있고 나이 먹어가며 점점 이러한 행태들이 보이네요

자유란 뭐고 존엄성은 무엇일까요

이미 지금도 그런 자유가 있습니다. 홀로 야생에 가서 살면 되거든요.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자연상태로 살 자유를 갖는게 더 좋은 사회인가요?

동물원 동물은 잡혀온거고.. 현대사회는 사람들의 합의로 구성, 운영된다는 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검찰이 성폭법 제12조(성적 목적을 위한 공공장소 [침입]행위) 죄목으로 이 사람을 기소했는데요.
이 경우 주거침입죄나 퇴거불응죄는 성폭법 제12조와 법조경합 관계에 있어서.. 성폭법 제12조만 적용되었다고 봐야겠지요.
처벌하는 행위에 [공공장소에 침입하거나 같은 장소에서 퇴거의 요구를 받고 응하지 아니하는] 이라는 행위가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촬영 등을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엿보기만 했다면 그걸 성 범죄로 처벌 할 수 없는 거군요.

그런데 왜 술집 화장실에 대한 침입에 대해서는 기소하지 않은걸까요? 화장실의 주인인 술집 사장의 의사에 반하여 침입했다고 보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으려나요?

독해가 술술 돼요. 아.. 최고의 글이네요.

우와 전부터 궁금하기도 하고 어느정도 비슷한 혼자만의 결론을 내리기도 했었는데, 다행히 합격! (채점도 제가합니다! ㅋㅋ)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잘읽었습니다

알려주셔서감사합니당ㅎ

형사법상의 죄형법정주의와 공법상의 법률유보원칙의 핵심은 동일합니다. 권력자의 자의적인 처분을 금하는 것이지요.
형사법상으로 명백하게 "범죄"로 규정되어 있는 행위를 한 자를 법정된 "형벌"로만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 죄형법정주의이고,
공법상 처분 등 행정행위를 함에 있어... [처분]의 근거가 되는 "법률"에 그 본질적인 부분이 규정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법률유보원칙이지요.

쉽게 이야기해서, 동일한 이상이 형사법적으로 발현되었을 때와, ... 더 보기
형사법상의 죄형법정주의와 공법상의 법률유보원칙의 핵심은 동일합니다. 권력자의 자의적인 처분을 금하는 것이지요.
형사법상으로 명백하게 "범죄"로 규정되어 있는 행위를 한 자를 법정된 "형벌"로만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 죄형법정주의이고,
공법상 처분 등 행정행위를 함에 있어... [처분]의 근거가 되는 "법률"에 그 본질적인 부분이 규정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법률유보원칙이지요.

쉽게 이야기해서, 동일한 이상이 형사법적으로 발현되었을 때와, 공법적으로 발현되었을 때의 차이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다만, 그 발현형태에 있어서 죄형법정주의가 조금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왜냐하면 형사법은 사람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제한하거나, 심지어 생명까지 박탈할 수 있는 영역을 다룹니다.
(즉, 공법상 불이익한 처분만을, 그것도 인간의 자유와 존엄에 직결되는 불이익한 처분만을 다루고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하시면 비슷할 겁니다.)
때문에 국가권력의 작용에 있어 한층 더 강력한 제한이 필요하겠지요.

때문에, 본문에서도 언급하였습니다만...
민사재판이나 행정재판에서는 법률의 유추해석 등이 통용되고, 일부 당연시되기까지 합니다만 형사재판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민사에서야 기본적으로 사인들 간의 다툼이고, 그 사인들 간의 분쟁의 기준점이 될 법률이 없다면 조리와 하위법령 등에 의할 수 있겠지요.
공법 영역에서야 불이익한 처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을 부여하는 행정행위나 처분 등도 존재하는 만큼,
행정행위의 일관성 및 신뢰보호를 위해 조리나 법률에 근거한 위임, 명령을 처분의 기준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자(또는 국가)에 의하여, 구성원의 자유와 존엄을 해칠 수 있는 형사법 영역에서만큼은...
그러한 요건이 엄격하게 법으로 정해져 있어야 하고, 하위법령에 대한 위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마땅한 것이지요.

법률유보의 원칙은 일정한 행정권의 발동은 법률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과 함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자유나 권리를 제한할 때에는 그 제한의 본질적인 사항에 관한 한 입법자가 법률로써 스스로 규율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갖습니다.

그리고 죄의 인정과 형의 부과가 작동하는 국가의 형벌권 행사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가장 중대한 침해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형벌권 행사에 대한 형사적 조항들이 외형만을 법률에 둔 채 그 본질적인 내용은 위임입법의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부득이하게 위임해야 ... 더 보기
법률유보의 원칙은 일정한 행정권의 발동은 법률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과 함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자유나 권리를 제한할 때에는 그 제한의 본질적인 사항에 관한 한 입법자가 법률로써 스스로 규율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갖습니다.

그리고 죄의 인정과 형의 부과가 작동하는 국가의 형벌권 행사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가장 중대한 침해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형벌권 행사에 대한 형사적 조항들이 외형만을 법률에 둔 채 그 본질적인 내용은 위임입법의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부득이하게 위임해야 할 경우에도 위임입법 원칙상 일반적·포괄적인 위임은 허용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법률에 의한 처벌법규의 위임은 그 요건과 범위가 보다 엄격하게 제한적으로 적용되어야 하고 따라서 처벌법규를 위임하는 경우에는 첫째, 특히 긴급한 필요가 있거나 미리 법률로써 자세히 정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로 한정되어야 하고, 둘째 이러한 경우에도 처벌대상행위가 어떠한 것일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법률에서 범죄의 구성요건을 구체적으로 정하며, 셋째 형벌의 종류 및 그 상한과 폭을 명백히 규정하되 위임입법의 위와 같은 예측 가능성의 유무를 판단할 때에는 해당 특정 조항 하나만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고 관련 법조항 전체를 유기적·체계적으로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합니다.

아울러 범죄의 구성요건을 하위법령에 위임하려는 때에는 하위법령에서 정해질 구성요건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도록 위임 법률에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정하여야 하며, "공공의 안녕질서", "미풍양속"과 같은 추상적이거나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판시한 바도 있습니다(헌법재판소 2002. 6. 27. 99헌마480).

즉, 형벌조항에 대한 무분별한 하위입법을 규정하게 된다면, 쉬운 개정을 통한 통일적 형사질서의 성립을 어렵게하고, 그로 인하여 오히려 더 혼란이 가중되는 측면도 있으며, 여러 측면에서 악용될 수도 있고, 또한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가져오는 형벌권의 행사는 적어도 헌법 하의 가장 상위입법의 형태인, 그리고 민주적정당성이 가장 크게 확보되어있는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의 형태에 의하여야 한다는 헌법적 요청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한 판결에 대한 기사가 올라오면 "뭐 이리 개떡 같은 판결이 다 있어!"라는 생각부터 드는데, 막상 판결 전문 읽어보면 "아이고 판사니뮤 머리 쓰느라 힘드셨겠네" 싶을 때가 많죠.

죄형법정주의 개념의 큰 근거가 공법상의 법률유보원칙과 이어지는부분이 있을까요? 본문의 사례는 조문에 없는것으로 죄를 판단할 수 없다라는 원칙과 관련된 것 같은데, 사실상 입법자나 시민이나 사법부 모두 구멍없는 법률을 만들고 집행하는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사회는 가변적이고 집행자는 인간이며 시간은 지나가니.. 그런면에서 최근에는 조리나 법률에 근거한 위임, 명령같은것으로 빈 곳을 메꾸는? 방식이 이뤄진다고 배웠는데 형법은 이런 원칙의 대상이아닌건가봐요. 죄형법정주의는 법률유보라는 원칙의 전제보다 더 강력한 근거로서 단독작용하는건지..
궁금합니당.

역시 법관련 글은 재밌죠. ㅎㅎ 잘 읽었습니다.

오옹,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어찌 인생이 꼬여서 행정법이랑 헌법은 책을 보고 있는데요. ㅠㅠ... 강사 분이 판례 설명해 주시는 느낌이에요. 잘 읽었습니다. 사, 사, 사는 동안 돈 많이 벌고 행복하시오.

법 교양시간에 실증주의 배우면서 예시로 봤던 사례네염
공대생이 듣기엔 매우 어처구니 없는 사례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애초에 프로그래밍이 잘못된거구나...
역시 개발자들을 괴롭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드네염.
좋은글 감사합니다.

근래에 들어 1만명 이상의 대규모 집회와 더불어 대다수 커뮤니티에서는 페미VS 반페미로 불길이 더 치솟았고 에서도 시끄러워진걸로 안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생각을 정리할 여유도 없었고 전에 탐라에 쓴 글들이 파이어가 난 관계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늘 조심스러워했다. 떠난 유저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기사나 탐라에 썼던 글들을 보면서 생각해봤는데..나는 이도저도 아닌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친페미니즘(?)에 가깝지만 이거다! 라고 딱 집어서 말하기도 뭣한 그런거랄까. 나에게 있어서 페미니즘은  "사상이지 그것이 올바르다거나 여성 문제를 싹 다 해결할수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래디컬 등등 작금의 개뻘짓을 보면 웃음밖에 안나오는데.  어떻게 보면 조롱당하는 건 필연이라고 봐야겠다.  여쪽에서는 메웜과 한패고 저쪽에서는 탈코르셋을 못한 존재로 취급당할테지만.



그런데 인터넷에서 주구장창 주장하는 살기좋은 세상에서 꿀빠는 젊은 여성의 이미지와 실제 처한 현실의 간격 차이는 괴리감을 더 심하게 만든다.
언제까지 젊은 여성으로 남을수 없고 행동거지라든가..가사나 육아 문제 등등 예전의 그 참혹함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암암리에 사회적인 압박이나 제약이 뒤따르는데 그저 개인의 선택이나 문제 쯤으로  축소되는 거에 대한 반감이 알게 모르게 크다. 정말 개인이 그러한 문제를 아무 제약을 안받고 선택을 할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인터넷을 넘어 극단으로 넘어가는거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한편으로는

나와 채팅하는 지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하는 말을 듣고서는 이렇게 말했다. 애초에 서로 설득할 생각도 들어줄 생각도 없었는데 거기서 뭘 합리를 찾느냐고. 듣고 보니 그럴듯 했다. 말로 해서 안되니까, 참아줬는데라는 것보다 원래 짜증났었는데 물어뜯을 기회를 얻은게 아닐까하는. 논리와 설득같은게 자리잡을 수가 없었던게 아닌지 모르겠다.

인터넷에서는 무슨 여자들이 역대급 꿀 빨고 있는거 같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네요 ㅋㅋ
페미는 정신병이라는 페미포비아도 피곤합니다. 언제 페미들 주장들 진지하게 들어볼 생각이라도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애초에 서로 설득할 생각도 들어줄 생각도 없었는데 거기서 뭘 합리를 찾느냐고. 듣고 보니 그럴듯 했다. 말로 해서 안되니까, 참아줬는데라는 것보다 원래 짜증났었는데 물어뜯을 기회를 얻은게 아닐까하는. 논리와 설득같은게 자리잡을 수가 없었던게 아닌지 모르겠다. -> 격공감합니다.

저급하게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이 취업이 안 되서인것 같습니다 돈을 못 벌어서요 20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연애가 아닙니다 일이죠 일이 자존감이고 연애고 자유죠 얼마 없는 일자리에 경쟁은 치열하고 사납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혐오가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배제하고 생존을 도모하는 것, 그것 아닐까요? 최근의 시위에서 일자리 얘기 비중이 꽤 있더라고요 공무원 남녀 비율도 많이 구호로 나오고

인터넷에서 주구장창 주장하는 살기좋은 세상에서 꿀빠는 젊은 여성의 이미지와 실제 처한 현실의 간격 차이의 괴리감22
이게 정말 큽니다. 메갈이나 워마드에서 외치는 말도 안 되는 주장에는 1도 공감하지 않고, 지지하지도 않습니다만 그들을 까면서 "2-30대 여성이 꿀 빨고 있지 무슨 차별을 경험했다고 그러냐"며 싸잡아 후려치는 주장 역시 1도 공감하지 못하겠습니다. 거기에 더 나아가서 안티 메갈을 외치며 일베를 미화하거나 그들의 주장을 합리적인 것처럼 포장하는 소리는 더욱 납득할 수 없고 말이죠.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오프라인처럼 즉각적으로 의견이 오가고 피드백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피로도가 높다고 느껴져서 가급적 끼어들지 않고자 하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보면 지나치기가 쉽지 않은 요즘입니다.

제가 주말에 바빠서 자주 못들어와서 그런가 이 이번에 시끄러웠는지 잘...

5년전쯤에 틴에이저 딸 둘이 있으신 가족과 잠깐 교류를 했었는데요. 서울에서 딸 키우는 부모로써 가지는 피로감이 상당하셨던 걸로 느껴졌어요.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지만, 본문의 마지막대로 이미 "서로 설득할 생각도 들어줄 생각도 없었는데 거기서 뭘 합리를 찾느냐"가 맞는것 같습니다.
저는 안티페미니스트여서 셀레네님과 다른 방향에서 반감이 있지만, 이걸 대화로 풀기는 이미 포기한 상황이거든요.
그리고 의 대체적인 성향상 대체로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편은 아니니 더더욱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네..인터넷은 그런식으로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안티 페미니즘이라..저는 뭐랄까 그에 대한 반감이 더 커서 그런가..이것도 제 편파적인 생각인지는 몰라도 인터넷 상에서 안티 페미니즘은 이러이러 해서 문제다 라는 논리보다 처음부터 페미는 악이다 여자가 살기좋다라는 프레임을 정해놓고 자꾸 상기시키는 그런쪽에 가깝다고 생각되네요. 싫었는데 너 잘 걸렸다. 마치 래디컬(중에 극단) 부류와 비슷한 인상을 준다는것.

마침 오늘 지인과 비슷한 얘기를 하고 왔는데 신기하네요. 저만해도 타인과의 소통이 주로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다보니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의 논의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고, 그러다 보면 확실히 어느 한쪽의 주장에 경도되거나, 아니면 아예 이런 논의 자체에 진절머리가 나게 되는것 같아요.

그런데 오프라인 상에서 페미니스트들과 많이 대화하면서 생각이 바꼈다는 지인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개인적 경험이나 직접적인 소통을 하게 되면 이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이 극단적이다, 무논리... 더 보기
마침 오늘 지인과 비슷한 얘기를 하고 왔는데 신기하네요. 저만해도 타인과의 소통이 주로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다보니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의 논의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고, 그러다 보면 확실히 어느 한쪽의 주장에 경도되거나, 아니면 아예 이런 논의 자체에 진절머리가 나게 되는것 같아요.

그런데 오프라인 상에서 페미니스트들과 많이 대화하면서 생각이 바꼈다는 지인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개인적 경험이나 직접적인 소통을 하게 되면 이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이 극단적이다, 무논리다 하는 비판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죠. 말씀하셨듯이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페미니즘은 애초에 설득이나 합의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온라인 상에서의 양극화가 그냥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의 뻘짓으로만 한정되지는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겠죠. 페미니즘이든, 안티페미니즘이든 계기에 있어서는 몰라도 사고가 확정되고 자기 스탠스를 정하는 데에는 대체로 인터넷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정도는 구분하....겠죠.
연습도 좀 됐으니;

흑백논리, 정체성 정치의 한계죠..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적과 아군으로 나눌 만한 것이 애초에 아닌데, 그걸 인정해버리면 정체성으로서의 동질감을 바탕으로 한 세력화가 불가능하니까요. 결국 그런 동질감을 강화하는 방법은 유구한 전통을 가진 허수아비 데려다 패는 방법으로 수렴할 밖에...

아까 타임라인에서 좋아요 백개 천개 누르고 싶은 댓글이 있었는데..

부디 에서만큼은 <상대편 병신짓 끌어와서 한도끝도 없이 싸우는> 민망한 장면은 안보았으면 하네요 ㅜ 솔직히 개인적으로 <상대편>이라는 대상을 설정하는거 자체가 어이없긴 한데 아무튼 말을 하자면 그렇게 되니까..

그저 운영자분들만 믿습니다.. ㅜㅠ 이미 이곳도 홍역 치를만큼, 아니 넘치도록 치렀고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소요 끝에 좋은 분들 너무나 많이 떠나갔어요..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긴 채.. 쌔고 쌘 논의 활발한 타 커... 더 보기
아까 타임라인에서 좋아요 백개 천개 누르고 싶은 댓글이 있었는데..

부디 에서만큼은 <상대편 병신짓 끌어와서 한도끝도 없이 싸우는> 민망한 장면은 안보았으면 하네요 ㅜ 솔직히 개인적으로 <상대편>이라는 대상을 설정하는거 자체가 어이없긴 한데 아무튼 말을 하자면 그렇게 되니까..

그저 운영자분들만 믿습니다.. ㅜㅠ 이미 이곳도 홍역 치를만큼, 아니 넘치도록 치렀고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소요 끝에 좋은 분들 너무나 많이 떠나갔어요..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긴 채.. 쌔고 쌘 논의 활발한 타 커뮤니티 놔두고 굳이 에 장작 지피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피난과 휴식은 리월월드에서 취해야 하는게 요즘 세상이지만 그래도 인터넷에도 구석진 한곳에 조용한 암자 하나쯤은 있어야.. ㅜㅠ

이 분위기가 뿍 이어진다면, 그리고 자한당이 트럼프 벤치마킹 잘만 한다면 다음 선거는 박빙일수도 있겠네요. 다음 선거때 남녀 평등 주장하면서 "능력 위주" "여성을 위한 국방의 의무" 등등. 잘만 한다면 본인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20~30대 남자들의 지지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양상]은 조롱과 경멸과... 뭔가 복잡하게 흐르고 있어서 옹호도/비난도 하기 어렵지만
[내용]은 딸 가진 아빠로서 아주 의미있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딸 가진"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게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그나마 딸래미라도 없었으면 신경이라도 썼을까 싶어서..

시위를 잘못 당기면 엄한 상대가 다치고 내가 다치죠..

성적 대립이 아닌 차별과 편견과 싸워야하는데...문제가 아닌 상대와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걱정됩니다.

https://youtu.be/F2EymcGtZxI

도로가 좁아서 소방차를 피해주고 싶어도 못비켜주는 현실입니다. 자전거 도시가 사실이라면 역대급 병크....

세종시군요. 애초에 자동차 도로설계를 좁게 해놓아서 대책이 없습니다 도로 뿐 아니라 주차공간도 부족하구요. 운전하다 보면 답답해 미칩니다 들리는 말에 도시 계획을 할 때 자전거를 교통의 중심에 두려고 했다는데... 정말 멍청한 발상이었죠.

전에 운전면허 딸 때 선생님께서 들었던 얘기가 일본은 자동차를 사려면 그 차 별로 주차를 위한 공간이 확보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런 부분은 제도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애초에 저희 아파트 같은 경우도 차 주차 공간이 모자라서 지하 주차장에 공간 밖에 주차를 하는 경우가 많은 수준이고 차를 끌고 돌아다녀도 가려는 건물에 주차 공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건 그냥 불법 주차하고 들어오세요라고 건물을 지을 때부터 생각한거라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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